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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의 포커페이스

입력
2025.03.07 17:20
수정
2025.03.07 18: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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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일 틱톡에 한 미국 퇴역 군인이 지난달 28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왜 정장을 입지 않았냐"는 친트럼프 매체 진행자의 질문과 참석자들의 반응에 눈물을 흘리며 "불명예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틱톡 coachmox8 캡처

1일 틱톡에 한 미국 퇴역 군인이 지난달 28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왜 정장을 입지 않았냐"는 친트럼프 매체 진행자의 질문과 참석자들의 반응에 눈물을 흘리며 "불명예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틱톡 coachmox8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백악관에서 복장 문제로 수모를 당했다. 보수성향 방송인이 “왜 정장을 입지 않았느냐. 정장이 있기는 한가”라며, 그의 군복 차림을 조롱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도 고마움을 모른다며 면박을 줬다. 젤렌스키는 “미국은 바다(대서양)가 있어 (러시아 위협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발끈했지만, 그대로 백악관에서 쫓겨났다.

□ 의전이 중요한 외교 무대에서 어떤 옷을 입느냐는 것도 선명한 메시지다. 시리아 반군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 지도자는 지난해 12월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직후 군복 대신 양복을 입고 외신기자들 앞에 섰다. 국제사회에 정상 국가로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복장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가명을 버리고 본명 아메드 알샤라로 자신을 소개했다. 미국 등이 지정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임에도 그는 국제사회의 별다른 반발 없이 시리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 젤렌스키는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을 찾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분명한 의사를 던졌다. 전쟁 피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미러 간의 일방적 종전 합의에 마냥 끌려다니지만은 않겠다는 ‘항전’ 메시지다. 트럼프 말마따나 ‘아무런 카드가 없는’ 젤렌스키로서는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어 카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여론은 트럼프 편이 아닌 듯하다. 젤렌스키가 트럼프가 판 함정에 빠졌다던 초기 평가는 어느새 트럼프가 젤렌스키의 ‘포커페이스’에 넘어갔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 회담 결렬 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젤렌스키 교체 압박 등 손에 쥔 카드 2장을 썼다. 반면 젤렌스키는 유럽의 지원 약속, 자국 내 지지율 급등이라는 카드 2장을 챙겼다. 1953년 한국전쟁 조기 종결을 공약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하자, 한국 정부는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한미 방위조약 체결을 압박했다. 아이젠하워가 이승만 대통령을 축출하는 ‘에버레디 작전’을 세우자,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으로 맞불을 놨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국가의 존망을 건 외교전에서 일방적 승리를 꿈꾸는 건 과욕이다.

이동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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