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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법보다 강한 건 주먹 아니라 대화"… 분열된 광장의 완충자 '대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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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경찰서 소속 대화 경찰관인 송영명 정보관이 8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서 갈등이 발생하진 않는지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8일 오후 6시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자유통일당 주도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나오는 윤석열 대통령 모습이 대형 화면에 등장하자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반대로 같은 시간 광화문 삼거리 인근 사직로 탄핵 촉구 집회는 깊은 탄식과 분노로 가득했다. 광화문 광장을 사이에 둔 탄핵 찬반 집회가 격앙될 조짐을 보이자 유독 분주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화 경찰' 조끼를 착용한 이들은 무대를 오르내리며 강연자들의 발언 수위를 점검하고 현장 곳곳을 돌며 흥분한 집회 참가자들을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다행스럽게 양측 집회 모두 큰 돌발상황 없이 해산했고, 그제야 대화 경찰들도 한숨 돌렸다.
종로경찰서 소속 대화 경찰관인 송영명 정보관이 8일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서 대화 경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로 '찬탄파'와 '반탄파'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8일, 한국일보는 종로경찰서 대화 경찰들의 하루를 동행취재했다. 송영명 신재명 정보관과는 탄핵 반대 집회에, 정범수 정보관과는 탄핵 찬성 집회에 함께 나갔다.
대화 경찰(dialogue police)은 스웨덴에서 처음 시행됐고, 국내엔 2018년 도입됐다. 지난해 기준 1,912명이 활동 중이다. 집회 참가자와 시민뿐 아니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과도 적극 소통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일을 한다. 정보과나 기동대 소속 경찰들이 주로 뽑히는데 약 3주 과정의 관련 교육을 이수하면 '대화 경찰'이라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고 집회 현장에 투입된다. 다만 이 역할만 전담으로 맡는 건 아니다.
이날 자유통일당은 오후 1시부터 세종대로에서 3만 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송영명 정보관의 일과는 하루 전인 7일 밤 10시부터 시작됐다. 무대가 사전 신고한 대로 잘 설치되는지 확인해야 해서다. 종로구 일대 집회만 10년째 관리해온 그는 "탄핵 정국 이후 보수와 진보가 한 공간에 들어서며 치열한 경쟁 구도가 자리 잡았다"며 "중재할 일도 늘었다"고 했다. 얼마 전엔 자유통일당이 신고와 달리 무대 방향을 남대문 쪽이 아닌 경복궁 방향으로 설치한 걸 집회 당일 새벽 1시에 발견했다. 진보 집회 구역을 보수 집회 참여자로 미리 채우려는 의도였다. 송 정보관은 규정 위반을 따지기에 앞서 대화를 시도했다. "(담당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냥 씩 웃더라고요." 딱딱한 통고가 아닌 설득이 통했고 무대는 다시 원래 방향대로 세워졌다.
송 정보관은 이날 10시간 내내 무대 위 발언들을 유심히 듣고, 선동하는 듯한 내용이 나오면 바로 주최 측 집행부와 소통했다. 한 강연자가 '대통령이 석방되면 바로 한남동 관저로 몰려가자'고 부추기자 송 정보관은 집행부에 연락해 실제 이동 예정인지 물은 뒤 안전사고가 우려된단 의견을 전달했다. 송 정보관 이야기를 들은 사회자는 "한남동에 가실 분은 구역별로 천천히,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달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대화 경찰들은 맞불집회를 자극할 만한 발언에 가장 긴장한다. 한 번은 "들어올 테면 와보라"는 진보단체 관계자 도발을 자유통일당 집회 연사가 위협적으로 맞받아쳐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송 정보관이 "싸움이 나면 서울서부지법 사태 때의 '폭력 사주' 프레임이 더 강해질 것"이라며 보수 집회 측을 간곡히 만류해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8일 종로경찰서 소속의 대화 경찰관인 신재명(맨 오른쪽) 정보관이 흥분한 집회 참가자에게 말을 걸며 진정시키고 있다. 이유진 기자
원칙을 내세우는 경찰 기동대와 집회 참가자들 간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이날 윤 대통령 지지자가 수상한 액체로 젖어있는 신문지를 동아일보 사옥에 던지며 소동을 벌이자 기동대 관계자는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흥분한 지지자들이 몰려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신재명 정보관은 일단 한발 물러서는 쪽을 택했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으세요. 얼른 하시고요, 저희(경찰) 좀 도와주세요." 멈칫한 지지자는 "좌파가 된 동아일보 폐간하라"고만 외친 뒤 후련한 얼굴로 확성기를 내렸다. 그러곤 누그러진 얼굴로 신 정보관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일부 시위 참가자가 "기동대가 자꾸 가라고만 해서 화가 난다"며 펜스를 열어 달라고 할 때도 대화 경찰이 나섰다. 주최 측 집행부와 협의한 도로 사용 현황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그들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공권력 개입 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지구대 근무 경험이 있는 신 정보관은 형사사건으로 확대되기 전 상황을 풀어볼 기회가 있다는 점이 대화 경찰로서 느끼는 큰 보람이라고 했다.
사실 대화 경찰의 일은 고되다. 요즘처럼 주말마다 대형 집회가 열리면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부터 현장에 나가 20시간가량 일한다. 노고에 대한 보상은 실제 근무 시간엔 못 미치는 시간 외 수당과 월 4만 원의 위험수당 등이 전부다. "사실 (수당을) 확인할 틈도 없다(정범수 정보관)"고 할 만큼 바쁘다. 그래도 일촉즉발 상황에서 완충자 역할을 해낼 때면 피로를 잊는다. 정 정보관은 "단순한 넋두리를 끝까지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며 "그것이 대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송 정보관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시위자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솔직히 대화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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