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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굽히지 않겠다"… 승자 없는 트럼프의 '관세 치킨 게임'

입력
2025.03.14 18:50
수정
2025.03.14 21:5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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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위스키 50%’에 ‘佛와인 200%’ 위협
보복戰 격화 유도… 美업계도 “재고를”
‘진심’ 확인 뉴욕증시 급락… 금값 폭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공개 대화를 하던 중 누군가를 지목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공개 대화를 하던 중 누군가를 지목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인이 시작한 관세 전쟁을 스스로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선제 공격을 당한 상대가 두 배로 보복하면, 다시 네 배로 더 모질게 복수하는 트럼프식 ‘관세 치킨 게임’이다. ‘자해 상황’까지 각오한 듯한 돌진에 미국 내 공포감도 상승하고 있다.

2배 보복에 4배 재보복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미국을 이용한다는 목적만으로 태동한 유럽연합(EU)이 (미국산) 위스키에 50%의 고약한 관세를 부과했다”고 적었다. 이어 “이 관세가 즉시 철회되지 않으면 미국은 프랑스 등 EU 회원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 샴페인, 알코올 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날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백악관 회담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다음 달 2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 관세’(상대국 관세 수준에 맞춰 자국 관세를 조정) 발표 방침을 재확인하며 “우리는 수년간 갈취당했다. 더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알루미늄이든 철강이든 자동차든 나는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알루미늄 등은 트럼프가 국가별 상호 관세와 별도로 지정한 품목 관세 부과 대상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1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다음 달 2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 관세가 한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 들어오는 자동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이 공평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보복의 악순환은 전날 발효한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에서 시작됐다. EU는 곧바로 260억 유로(약 41조 원) 규모 미국산 제품 대상 최대 50% 보복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금속 관세의 영향을 받은 EU의 대미 수출품 가치와 맞먹는 액수였다. 다음 달 1일 시작되는 1단계 보복 관세 부과 대상에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위스키 등 대체로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이 포함됐다.

다만 EU는 오로지 상대 굴복을 강요하는 트럼프와는 달리 협상 여지도 남겨 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 소비자 모두에게 나쁘기 때문”이라며 “우리 이익을 보호하겠지만 협상에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세 말고 건배 원한다”

13일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13일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트럼프의 확신은 자국 업계마저 불신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증류주협회(DISCUS) 최고경영자(CEO) 크리스 스웡거는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EU와 무관세 주류 협정을 체결해 달라고 요구하며 “우리는 관세가 아닌 건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조차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상대국 보복 등 트럼프 관세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을 냈을 정도다.

미국 여론도 심상치 않다. 이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48%가 ‘미국 경제가 악화 중’이라고 답해, ‘개선되고 있다’는 응답 비율(19%)을 압도했다. 현 경제 상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34%)보다 트럼프(44%)를 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언제 실현될지 모를 제조업 부활을 내세운 트럼프 정책이 내수 위축을 방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가 또 무슨 결정을 할지 짐작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은 미국 투자자들까지 곤경에 몰아넣고 있 다. 트럼프는 이날 회견에서 “약간의 혼란은 있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발(發) 경기 침체를 감내하고서라도 관세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증시는 트럼프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이날 1.4% 하락했고, 최근 고점(2월 19일) 대비 낙폭이 10%를 넘어섰다. 지난달 고점 이후 이날까지 16거래일 만에 증발한 S&P500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5조3,000억 달러(약 7,711조 원)에 달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반영된 국제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이날 온스당 3,000달러(약 430만 원)를 돌파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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