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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정국에 美 들이민 외교 청구서 "민감국가에 한국 포함"

입력
2025.03.17 04:30
수정
2025.03.17 09: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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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 페루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리마=왕태석 선임기자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 페루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리마=왕태석 선임기자

미국 정부가 원자력, 인공지능(AI) 등의 협력을 제한할 수 있는 ‘민감국가' 명단에 올 1월 한국을 추가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비상계엄 이후 국내 정치의 혼돈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청구서를 들이민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줄곧 제기된 '정상외교 공백'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의 대외 리스크 관리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DOE)는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시켰다. 미국은 국가안보와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해 핵과 원자력, AI를 비롯한 첨단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제한할 수 있다. SCL 25개국에는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 핵보유국과 북한 시리아 이란 등 테러지원국이 포함된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SCL에 추가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명단을 매년 수정하는데, 효력이 발휘되는 4월 15일 이전까지 변화가 없으면 한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이 제한될 수 있다.

시각물_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들.png

시각물_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들.png


이번 SCL은 조 바이든 정부 말기 작성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바이든 정부와 '가치외교'를 강조하며 각별한 유대를 과시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2023년 '워싱턴 선언'에 이어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정부는 "정보·안보에서 산업·기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분야를 망라한 협력 방안을 문서로 제도화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자칫 공염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역대 가장 공고한 한미동맹이라고 자부하던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전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넘어가는 미국의 정권 교체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교당국은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앞서 11일 국회에 출석해 "최근에 비공식 경로로 관련 동향을 알게 됐으며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뒤 에너지부가 내부에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답하는 데 그쳤다. 자연히 후속대응도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국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한미 양국의 관련 부처 논의는 경위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 행정부 차원에서 작심하고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시킨 건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한미 간 핵심 의제를 다루는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 정부 차원이 아니라 에너지부 실무자의 행정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한미 관계 전반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그쪽(실무자)에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금지국가 추가 배경에 대해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정부가 탄핵 정국에 따른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얼마나 위기관리 능력을 보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관련 보고를 마쳤지만,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한미 정상 간 대화나 통화가 여의치 않아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어떤 액션을 취하고 답을 내는지 기다려 봐야 하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후속 과제도 쌓여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발표한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 일본은 넣고 한국은 제외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 인사가 한국을 찾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었지만 무산됐다. 향후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요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해 미국과의 각종 협상에서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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