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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추방 위해 '227년 전' 제정 전시법 발동한 트럼프… 법원이 제동

입력
2025.03.16 17:00
수정
2025.03.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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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이민자 추방 목적 권한 발동에
법원 "추방 대상자 태운 항공기 귀환하라"
구금된 대상자 최대 14일 동안 추방 금지
'적성국 국민법' 법적 쟁점 중심 심리 예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을 떠나며 리무진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을 떠나며 리무진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려 227년 전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근거로 미국 내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추방하려 하자 미 연방법원이 일시 중단을 명령했다. 이민자 해외 강제 이송은 위법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때 마지막으로 적용된 후 사문화한 전시법까지 꺼내 들어 강제 추방을 단행하자 제동을 건 것이다. 최종 판단은 연방대법원이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14세 이상 '트렌 데 아라과' 관련자 즉각 추방"

15일(현지시간) AP통신·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제임스 보스버그 워싱턴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해 내린 외국인 추방령의 효력을 14일 동안 일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아울러 "대상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하고 있거나 비행 중이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며 "즉시 (법원 명령이) 준수되도록 조치하라"고 밝혔다.

이번 명령은 트럼프 정부가 법률 권한을 발동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나는 오늘 '트렌 데 아라과'(TdA)에 소속된 사람 중 미국 내에 있으면서 합법적 시민권을 갖지 않은 14세 이상 모든 베네수엘라 시민에 대해 체포·구금·추방할 것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TdA는 베네수엘라의 악명 높은 국제 마약 밀매·폭력 집단으로, 지난달 미 국무부는 이들을 '외국 테러 단체'(FTO)로 지정했다. 그는 TdA를 '미국 침략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이들은 미국을 불안정화하려는 목적으로 비정규전을 벌이고 미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TdA를 미국과 전쟁 중인 국가 취급하며 전시법 발동을 정당화한 것이다.

그러자 미 인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대통령이 적대적 국민법을 사용한 것은 완전히 불법"이라며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ACLU의 리 겔런트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식 국가가 아닌 범죄 조직에 이 법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TdA를 억압하는 데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美 법무부 "행정부 권한 침해" 비판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이 15일 애리조나주 노갈레스 마리포사 육로 입국장에 있는 국경 장벽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갈레스=AP 연합뉴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이 15일 애리조나주 노갈레스 마리포사 육로 입국장에 있는 국경 장벽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갈레스=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사문화된 적성국 국민법을 적용한 이유는 불법 이민자들의 '신속한 추방'을 위해서다. 1798년 제정된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전시 상황에서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 등을 영장이나 재판 등 통상적 절차 없이 약식으로 구금·추방할 수 있다. 미 정부가 해당 법안을 적용한 사례는 227년간 단 세 차례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을 투옥하고 일본계 미국인을 대량 수용하는 데 활용된 것이 마지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에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남부 국경을 개방해 불법 이민자가 폭증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법을 활용해 모든 이민자 범죄 조직을 추방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시사했다.

보스버그 판사는 오는 21일 소송 당사자들을 불러 적성국 국민법의 적용 대상 등 법적 쟁점을 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헌법학 교수는 대법원까지 갈 수 있는 이 사건의 운명에 대해 "법원이 위협적인 침략이 있다는 대통령의 결정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NYT에 말했다. 미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브레넌 사법센터를 인용해 "트럼프가 평시 상황에 이 법을 적용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법 남용이 될 것이며 결국 법정에서 다퉈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즉시 항소하면서 법원의 가처분 명령에 대해 "위험한 외국인 추방에 대한 행정부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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