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경찰은 공안, 영장판사는 화교"... 혐오감 담은 '가짜뉴스'가 법원 폭동 키웠다

입력
2025.01.21 04:30
4면
구독

법원 난동 전 각종 가짜뉴스 일파만파
정치 유튜브나 SNS 통해 빠르게 확산
"가짜뉴스가 폭동을 일으키는 트리거"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여파로 20일 서부지법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이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여파로 20일 서부지법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이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중국 공안이냐!" "경찰이 막으면 무조건 걷어차세요."

19일 새벽 헌정 사상 초유의 법원 난입 사태가 일어나기 전 윤석열 대통령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법원 인근에 배치된 경찰들이 중국 공안이거나 중국인이라는 '가짜뉴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국가나 인종을 향한 혐오감을 담은 가짜뉴스가 광기 어린 집단 폭력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같은 가짜뉴스는 극렬 보수 성향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5월 경찰청이 중국 공안부와 '경찰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한 사진을 활용해 일부 유튜버 등이 "법원에 투입된 경찰은 곧 공안"이라고 퍼뜨린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와 같은 범죄 공동 대응을 위한 협약이 음모론 확산 소재로 악용된 셈이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는 경찰 기동대가 중국 영어명(CHINA)의 앞 글자인 'CN 1400-1'이라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며 '공안이 국민을 겁박 중'이라는 황당한 글도 올라왔다. 실제로는 충남경찰청 기동대 깃발이었다. CN은 '충남(Chung Nam)'의 약자였다.

음모론은 그전부터 성행하고 있었다. 17일 서부지법 집회 현장에 '공안 아웃'이라는 손팻말이 등장했고, 18일 한 극우 유튜버 영상에는 '아는 지인을 통해 서울 대림동과 경기 안산시 파출소에 근무한 중국인이 서울 경찰서로 발령받은 것을 확인했다. 중국 개입이 확실하다'는 댓글이 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경찰관을 중국인으로 확정 지은 뒤 폭력을 조장하기도 했다. 18일 극렬 보수 집단 오픈채팅방에는 '인간 방어벽(스크럼)을 짤 때 경찰이 막는 것은 무조건 폭력이고 위법'이라며 '무조건 뿌리치고 발길질을 하라'는 내용이 공유됐다.

18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경찰이 중국 깃발을 들고 왔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커뮤니티 캡처

18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경찰이 중국 깃발을 들고 왔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커뮤니티 캡처

급기야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가 '중국 출신'이라는 가짜뉴스도 등장했다. 영장 발부 직후 엑스(X·옛 트위터)엔 차 판사가 인천에서 태어났고 '화교 출신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극우 커뮤니티에선 차 판사가 '중국·북한과의 커넥션으로 대통령을 불법 구속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근거해 판결을 내린다'는 거짓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처럼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감을 담아 과격 시위를 부추긴 가짜뉴스는 법원 난입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난동을 부린 지지자들은 경찰을 향해 "중국 경찰" "공안" 등이라고 소리치고 욕설을 내뱉었다.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중국인이냐. 아니라면 한국말을 해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취재진도 '검열'을 피할 수 없었다. 집회 현장을 찾은 사진기자 최모(28)씨는 "강성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중국인 아니냐'는 질문을 수차례 들었다"고 토로했다. 가짜뉴스로 인한 맹목적 믿음이 폭력 사태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 유튜브와 SNS를 통해 확산한 가짜뉴스가 언제든 극단적 폭력 양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종명 성균관대 글로벌융합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유튜브 공간에서 가짜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한 극렬 지지층은 이를 일종의 교범으로 체화한다"며 "가짜뉴스가 폭동을 일으키는 일종의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서부지법 사태에 대해 "가짜뉴스에 일종의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이 된 상황"이라며 "극도의 흥분 상황에선 가짜뉴스로 형성한 믿음이 시발점이 돼 집단 폭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유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