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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제트보다 3세기 앞선 여성 참정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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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글로스터셔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마거릿 브렌트(Margaret Brent, 1601~1671)가 1638년 두 남동생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넌 까닭은 신앙의 자유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이 아버지와 남자 형제, 남편의 소유물처럼 여겨지고, 가문의 신분·재산이 오직 장남에게만 세습되던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신대륙에서는 인력이 부족해서 여성에게도 얼마간 기회가 있긴 했다. 하지만 더 거친 환경과 6대1에 이르는 성비 속에서, 독신이었던 그는 본국의 그것보다 훨씬 난폭한 남성 지배문화와 싸워야 했다.
그는 메릴랜드 주의회를 설득해 여성 최초로 토지를 분할받아 지주가 됐고, 계약직 하인들을 부리며 남동생들을 대리해 재산권 관련 소송 등을 주도했다. 담배 무역과 토지 거래 등 사업에서도 수완을 인정받으며 유력 상공인이 됐고, 메릴랜드주 초대 총독 볼티모어 경(Leonard Calvert)의 법적 재산 관리인으로도 일했다. 그와 총독은 둘 다 가톨릭 신자였다.
1645년 영국 찰스 1세와 의회의 갈등이 식민지로 확산되면서 성공회파와 가톨릭 세력 간 무력 충돌 사태가 빚어졌다. 그 와중에 47년 볼티모어 경이 숨졌고, 마거릿은 총독의 재산 일부를 처분해 급여를 못 받아 이탈하려던 병사들을 다독이며 분쟁을 잠재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1648년 1월 21일 주의회에 출석, 지주로서 자신의 투표권뿐 아니라 그가 법적으로 대리하던 볼티모어 경의 투표권까지 두 개의 표결권을 요구했다. 식민지·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참정권 요구였다.
그의 요구는 물론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오직 여왕에게만 있다는 불문율에 따라 거부됐지만, 의회는 그의 재산 처분권은 인정했다. 마거릿의 재산 처분에 항의한 볼티모어의 유족에게 당시 의회는 “식민지 안전은 다른 누구보다 브렌트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 나았다. 군인들은 오직 브렌트에게만 예의와 존중을 보였다”고 답장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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