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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명령

입력
2025.01.21 16:00
수정
2025.01.21 16:5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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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각물_트럼프 취임 첫날 주요 행정명령

시각물_트럼프 취임 첫날 주요 행정명령


전직이 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년 전 취임 첫날 17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역대 대통령보다 서너 배 많았다. 그가 택한 1호 행정명령은 ‘100일 마스크 쓰기’였다. 1호로 예상됐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약 복귀는 3호로 밀렸다. 코로나19 대응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겠다는 의지 표현인 동시에 마스크 착용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던 트럼프 흔적 지우기에 더 선명한 메시지라고 봤을 것이다.

□행정명령은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속한다’는 미국 헌법 2조에 기반하지만 명시적 규정은 없다. 헌법과 연방법률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별도 입법 없이 효력을 낸다. 의회가 제동 거는 수단은 배치되는 새 법률을 만들거나 예산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대공황 때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4선 재임기간에 총 3,721건, 연평균 307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거의 하루 1개꼴이다.

□특히 정권 교체 뒤 처음 서명하는 ‘1호 행정명령’의 상징성은 크다. 새 행정부의 비전과 우선순위를 대내외에 알릴 수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처럼 ‘전 정부 뒤집기’에 최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09년 취임 즉시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용의자 수용을 위해 열었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1호로 발령했고, 바통을 넘겨받은 트럼프는 오바마의 대표 업적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지 명령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임기 첫날만큼은 독재자가 되겠다”는 공언대로 트럼프 2기의 ‘바이든 지우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 행정명령 78개를 모조리 무효화시키는 강력한 명령을 1호로 택했다.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등 하루 동안 46개 명령을 쏟아냈다. 바이든의 3배에 가깝다. 하지만 민주적 합의 절차가 없는 행정명령 남발은 1기 ‘반(反)이민 행정명령’ 후폭풍처럼 언제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이 거센 우리나라에 행정명령 같은 막강 무기를 손에 쥐어주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래서 계엄이라는 더 무시무시한 무기를 동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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