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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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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유신정권 막바지였던 1979년 10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 후 남긴 말로 유명하다. 그해 8월 YH무역 여성 노동자 172명이 마포 신민당사에서 회사 정상화 등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했고, 경찰이 당사에 난입해 강제 진압한 사건이 벌어졌다.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장악한 국회는 이 사건과 미국에 박정희 정권 지지 철회를 요청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를 빌미로 김영삼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로 인해 부마민주항쟁이 촉발됐고 유신정권은 종말을 맞았다.
□ 김영삼을 소환한 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다. 야5당이 21일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조장·선동했다는 이유로 윤 의원 제명 촉구결의안을 제출하자, 그는 "민주당발 의회 독재의 권력과 폭거가 저를 위협한다고 해도 저의 신념은 굽혀지지 않는다"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맞받았다. 민주화를 상징하는 발언을 위헌적 계엄과 법원 난입 등 법치주의 부정을 옹호하는 데 차용한 몰역사적 행위다.
□ 국회법상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의원직 제명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정족수와 같다. 국민이 선택한 대표자 자격을 박탈하는 중대 결정인 만큼 엄격한 요건을 마련해 둔 것이다. 역대 의원직 제명은 김영삼 사례가 유일하다. 1991년 국회 윤리특위가 의원 징계안을 심사하게 된 이후 가장 높은 징계는 '30일 출석 정지'였다.
□ 제헌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76년 동안 의원 제명안 발의는 4건(6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22대 국회 임기 8개월 동안 발의된 의원 제명안은 윤 의원을 포함해 9건(9명)에 이른다. 정치 실종에 따른 남발 탓에 의원 제명안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다. 윤 의원이 야당에 '제명할 테면 해보라'는 태도를 보이는 배경 중 하나다. 국회의원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잣대는 높아졌는데, 의원들의 윤리의식은 도리어 낮아졌음을 보여준 씁쓸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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