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기존 글로벌 안보ㆍ통상 질서를 뒤흔들 ‘마가(MAGA)정책’들을 숨 가쁘게 토해내고 있다. 취임 당일만 해도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그린뉴딜 및 전기차 의무 철회, 무역협정 재검토, 미국 내 석유ㆍ천연가스 증산 등 한반도 평화체제 및 우리 경제ㆍ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줄 조치들을 사실상 가동했다. 하지만 우리는 불법 계엄사태에 따른 정부 수반의 실질 공백 상황으로 대미관계 불확실성을 극복할 외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각국 정상들이 지금 앞다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는 건 의례가 아니라 시급을 다투는 치열한 외교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취임 당일 100개에 육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첫날로 만들겠다”고 의지를 천명했다. 이해 당사국과 대화보다 일단 MAGA 정책을 강행해놓고 보겠다는 불도저식 스타일을 천명한 셈이다. 그 결과 대미관계의 불확실성은 어느 나라나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트럼프 취임 전인 지난해 말 다급하게 플로리다 트럼프 자택까지 날아갔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이례적 행보도 ‘관세 폭탄’ 저지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조기 정상회담 추진을 논의한 일본, 정상 간 통화에 이어 트럼프의 방중 정상회담까지 유례없이 공을 들이는 중국 등도 미국과의 협력ㆍ갈등 상황의 격변에 맞춰 우선적으로 정부 간 전략대화 테이블을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외교 공백이 길어지면 미국에 의해 한미동맹은 물론, 기존 안보ㆍ경제협력 기조에 일방적 현상 변경이 빚어질 위험이 커진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22일 “미국 신정부 출범으로 우리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며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하겠다”고 했으나 경제장관 수준의 수동적 대응책에 불과하다. 전략적 입장 조율을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어렵다면 적어도 양국 간 장관급 ‘고위 경제ㆍ안보대화’라도 책임지고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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