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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하루

입력
2025.01.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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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1일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주택가에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자원봉사원들이 취약계층에 전달할 구호품을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부산=뉴스1

21일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주택가에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자원봉사원들이 취약계층에 전달할 구호품을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부산=뉴스1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이다. 뿌리는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가 2021년 쓴 책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왔다. 아보행을 아보하로 바꾼 것이다. 최 교수는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같은 행복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고 일갈했다. 진정한 행복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게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행복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박탈감과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보다는 ‘아주 보통의 행복’을 추구하고 흡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즉문즉설’ 강연으로 유명한 법륜 스님도 건강은 아프지 않은 것이듯 행복은 괴롭지 않은 것이라고 설파한다. 괴롭지만 않으면 누구나 행복한 것인데 사람들은 특별하고 즐거운 것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괴로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큰 사고가 없어 무탈한 ‘아주 보통의 하루’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30여 년 전 버스나 택시를 타면 운전석 옆엔 늘 ‘오늘도 무사히’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아이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작품이 원조다. 워낙 교통사고가 많던 시절이라 무사고를 기원하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진 않은 듯하다. 단지 운이 좋아 살아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때가 많다.

□ 어수선한 일들이 잇따르며 ‘아보하’에 감사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새삼 깨닫는다. 사실 '아보하'는 언제든 아주 특별한 하루로 바뀔 수도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통상 사람들은 기념일이 돼야 의무감에 선물을 하는데 행복 고수들은 기념일도 아닌 ‘아보하’에 그냥 깜짝 선물을 하곤 한단다. 그럼 뜻밖에 선물을 받은 이는 더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기뻐하면 보는 이도 행복하기 마련이다. 설 명절엔 ‘아보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냥 누군가에게 작은 선물을 해 보면 어떨까. 행복 천재들의 영업 비밀을 훔진다고 죄가 되진 않을 것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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