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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삼가고 근신해야 할 날?

입력
2025.02.03 04:30
27면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2025년 2월 달력. 게티이미지

2025년 2월 달력. 게티이미지

금기하는 전통은 아주 깊고 오래됐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곧 21일간 외부인 출입을 꺼린다’ ‘대문에 금줄을 달아놓는다’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왜 외부인 출입을 꺼리는가? 진중해지기 위해서다. 그것은 심신 모두에 해당한다. 경망스러워지는 마음을 다잡고, 몸으로 들어오는 병균을 막기 위해서다. 징크스가 아니라 과학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지키는 지혜다.

지난 이야기에서 신라 비처왕을 소개했었다. 왕의 행차 중 까마귀와 쥐가 함께 와서 짖는데, 쥐가 사람처럼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말했다는 그 사건이다. 까마귀를 쫓아간 병사가 돼지 싸움 구경하다 한 노인의 봉투를 받아왔다. 겉봉에 ‘뜯어보면 두 사람이,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였는데, 측근 신하가 ‘두 사람이란 일반 백성, 한 사람이란 왕’이라 하자 결국 뜯었다.

거기까지 소개하고 끝냈는데, 해괴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궁으로 들어선 왕의 눈에 거문고 갑이 들어왔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거문고의 갑을 쏘라’는 글이 쓰여 있었던 것이었다. 지체 없이 쏘았더니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실은 승려와 후궁이 갑 속에서 몰래 만나고 있었다. 그렇게 들킨 둘은 참형을 당했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해석이 따른다. 나는 이 사건을 5세기 후반 신라 사회의 문명적 충돌로 본다. 봉투를 준 노인이 상징하는 구세력, 궁에서 일하는 승려가 상징하는 신세력 사이의 갈등이다. 외견상 구세력이 이긴 것처럼 보인다. 승려의 부정행위는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각설하고, 이 얘기를 소개한 삼국유사 끝에 금기로 마무리하는 대목에 주목하자. 이 사건 이후 신라 사람 사이에 ‘새해 첫 달의 첫 돼지(亥), 쥐(子), 까마귀(午)가 들어가는 날은 삼가는 습속’이 생겼다. 앞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까마귀는 본디 오(烏)이지만 같은 음인 오(午)로 대치했다. 우리 전통 속에 기록된 첫 금기다.

올해로 치면 음력 새해 첫 달 ‘꺼리는 세 날’은 1월 2일과 3일(양력 1월 30·31일) 그리고 9일(2월 6일)이다. 양력 1월 30일은 돼지(기해·己亥), 31일은 쥐(경자·庚子), 2월 6일은 까마귀(병오·丙午)다. 3일 기준으로 앞 두 날은 지났고, 마지막 ‘삼가야 할 날’만 남았다. 근신하는 뜻을 살리는 한 주가 된다면 좋겠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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