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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위에 선 머스크... 표적 된 美 국제개발처 사실상 해체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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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던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워싱턴 본부. 거의 텅 비어 있던 이곳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 소속 인사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본부 건물 접근권을 요구하며 기밀 문서가 보관된 보안격리정보시설(SCIF)에도 진입하려 했다. USAID 보안 책임자들은 "최고 등급의 보안 승인을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며 몸으로 막아섰다. 양측 대치가 시작됐다.
타협 기미가 안 보이자 DOGE 인사가 머스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스크는 USAID 보안 담당자에게 "길을 터 주지 않으면 연방보안관을 투입시키겠다"고 경고했다. USAID 측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DOGE 팀은 결국 기밀 접근에 성공했다.
이러한 장면을 두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3일 "DOGE와 USAID 간 긴장이 절정으로 치달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최고 보안 책임자 2명은 해임됐고, USAID 직원 100여 명은 정직에 해당하는 행정휴가 조치를 받았다. USAID 본부 건물은 월요일인 3일 아예 폐쇄됐다. 머스크는 엑스(X)를 통해 "나는 이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과 상세히 논의했고, 그는 USAID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지금 USAID를 폐쇄하고 있다"고 밝혔다.
USAID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중앙아메리카를 순방 중인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USAID는 많은 경우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반한다"며 자신이 USAID 처장 대행을 겸직한다고 밝혔다. 국무부에 흡수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USAID 폐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사실 USAID는 이미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유명무실화했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을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외 개발 원조를 90일간 동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탓이다. USAID는 그동안 미국의 해외 원조를 주도해 온 연방 기관이다. 지난해 기준 약 442억 달러(약 64조4,4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고, 총 130개 국가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에티오피아, 요르단, 콩고, 소말리아 등이 최대 수혜국이다.
하지만 이는 '낭비성 지출'이며, 그 삭감을 위해선 USAID 폐지 또는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입장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마리암 델로프레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USAID 예산 삭감 땐 의료, 식량, 산모 지원 등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며 "매우 치명적 조치"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매슈 카바나프 조지타운대 교수도 "국무부는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곳이지, 인도적 지원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기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는 USAID 폐지를 머스크 등 비(非)선출 인사들이 진두지휘한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SCIF는 초고도 보안 시설로 이곳에 보관된 국가 기밀 정보를 검토하려면 특별한 보안 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하지만 SCIF 접근을 요구한 DOGE 팀은 일부 인사만 보안 승인을 보유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USAID와 DOGE 간 대치와 관련, 지난 2일 "머스크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두둔하기만 했다. 뉴욕타임스는 "머스크의 반(反)정부 공세가 워싱턴을 뒤흔들면서 혼란과 격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 사회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팀 케인 연방 상원의원은 "보안 승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 기밀 시설에 접근했다면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회 동의도 없이 연방기관을 폐지하는 막무가내 구조 조정은 '연방법 위반' '헌법 위배'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CNN방송은 "트럼프 행정부의 USAID 폐지는 의회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카바나프 교수는 "미국 헌법 1·2조는 기관 설립·폐지를 의회 권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부 기관을 없애는 건 명백히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브 블라덱 조지타운대 교수도 "의회가 세운 기관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파괴하려 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완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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