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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혐오는 대한민국을 공멸로 몬다

입력
2025.02.06 00:00
27면

'초등생 악인' 만든 편가르기 실험
집단 폭력의 핵심은 맹목적 복종
정치권 각성 없다면 공멸 위험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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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에 내재한 깊은 혐오와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익과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전장이 되어버린 한국 정치에서, 오래전 행해진 유명한 실험들이 상기된다.

1968년 미국 초등학교 교사 제인 엘리엇은 자신이 가르치는 3학년 학생 28명에게 실험을 했다. 엘리엇은 학생들을 푸른 눈과 갈색 눈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오늘은 갈색 눈을 가진 집단이 푸른 눈 집단보다 우월한 날이라고 말한다.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급식도 먼저 먹고, 운동장에도 먼저 나가 놀고, 교실에서도 좋은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는다. 그러자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 패가 갈린다. 갈색 눈 아이들은 완장을 찬 듯 푸른 눈 아이들을 깔보고, 푸른 눈 아이들은 슬퍼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다음 날 교사는 "사실은 푸른 눈이 갈색 눈보다 똑똑해"라고 말하며 두 그룹의 처지를 뒤바꾼다.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은 이제 복수를 해야겠다며 신나 하고, 전날 갈색 눈 아이들이 했던 것보다 잔인하고 악랄하게 대한다.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실험이 끝나자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는 행복하지 않았다" "차별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란 정당과 빨간 정당이 나뉘어 선거에 승리하면 잔인한 우월감에 취해서 상대 당에 대해 보복을 가하는 한국 정치는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에서 벌어진 상황과 비슷하다. '눈 색깔'이라는 기준으로 패가 갈리는 순간 같이 뛰놀던 친구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는 초등생들과, 진영이라는 틀에 갇혀 끝없는 싸움에 열중하는 정치인들은 닮았다. 실험이 끝났다는 선생님의 말에 어떤 아이도 행복하고 재밌었다고 하지 않은 것처럼 서로 간의 극단적 혐오는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한 가지 실험을 더 소개하겠다. 1961년 실시된 '밀그램 실험'이다. 참가자들을 교사와 학생 두 그룹으로 나눠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시험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점점 더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했다. 많은 참가자들은 운영자 지시에 따라,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을 호소해도 개의치 않고 전기 충격을 최대치까지 올렸다. 이 실험은 환경에 따라 평범한 인간도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과 함께 종종 언급된다.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핵심은 맹목적 복종과 사고의 부재 때문이다. 극단적 진영 갈등과 정치엘리트들의 선동이라는 파괴적 정치 환경은 평범한 일반인들을 합리적 판단 결여와 맹종으로 이끈다. 90명에 이르는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일반인들이 법원에 몰려가 창을 깨부수고, 경찰을 폭행하며, 판사를 사냥감 찾듯이 찾았다. 밀그램 실험의 참가자들이 실험을 지휘하는 운영자가 계속해도 된다고 하자,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는데도 전기 충격 버튼을 주저하지 않고 눌렀던 것처럼 말이다. 극으로 치닫는 진영 간 갈등은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게 한다.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의 열 살 아이들이 절감했던 것처럼 '혐오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정치권이 깨닫지 않으면, 결국 공멸하게 된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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