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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기업 경쟁력 분석' 3형제 스타트업 일루넥스의 박진혁 대표

입력
2025.02.12 05: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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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손자병법의 유명한 문구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한마디로 자신의 경쟁력을 파악하라는 뜻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장단점을 잘 알아야 장점을 키우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2018년 설립된 신생기업(스타트업) 일루넥스는 손자병법의 필승 전략을 인공지능(AI)으로 구현했다. 이 업체는 기업이 동종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기업의 가치사슬 분석이라는 독특한 사업을 하는 박진혁(43) 일루넥스 대표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박진혁 일루넥스 대표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AI로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는 EM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박진혁 일루넥스 대표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AI로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는 EM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트럼프 행정부와 연관된 가치사슬 분석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박 대표는 가치사슬 분석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일루넥스가 제공하는 가치사슬 분석은 거래처, 경쟁업체, 공급망, 마케팅 등 기업 활동을 둘러싼 다양한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 뒤 해당 기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현재 거래나 재료 공급 상황 등 외부 환경에 변동이 생길 경우 받을 수 있는 영향 등을 파악한다.

가치사슬 분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더 중요하게 부상했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산 수입품의 관세를 올리는 등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의 이익 추구 경향이 더 강해져 기업들이 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치사슬 분석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박 대표는 기업 경쟁력을 AI가 분석해 그래프로 보여주는 '이펙트몰(EM)'솔루션을 개발했다. EM은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EM데이터', 분석 결과를 알기 쉽게 시각물로 보여주는 'EM그래프', AI가 향후 전망을 예측해 조언하는 'EMGPT' 등 3가지로 구성됐다. 전체 솔루션을 3개 부분으로 나눠 놓은 것은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기업은 EM의 3가지 구성 요소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이용하면 돼요. 그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죠."


세계 1위 기업들도 없는 무기로 틈새시장 노려

EM데이터는 오라클 등 기업이 사용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연결할 수 있다. "EM데이터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연결해 데이터를 정제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있어요. 여기 필요한 연결통로 역할을 하는 API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죠."

EM그래프는 분석 결과를 '노드'라고 부르는 둥근 원 모양으로 보여준다. 작은 원의 집합인 노드 안에서 중요도에 따라 작은 원들의 크기가 달라지고 이들을 선으로 연결해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알기 쉽게 보여주는 화면 구성 방식으로 기술 특허와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 만약 이런 결과물을 게시판 형태로 보여주면 한 화면에 모두 노출하기 힘들다. "시장, 경쟁사, 투자자 자료 등 분석을 원하는 내용을 입력하면 여기 맞춰 결과물을 원으로 보여줘요. 원에 연결된 선을 따라가면 이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EM그래프를 통한 향후 전망이다. "EM그래프는 단순히 현재 상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 흐름까지 예측해 줘요. 관계를 따라가 보면 나중에 중요하게 부상할 만한 공급망과 제휴사 등을 미리 알 수 있죠."

메타의 '라마', 구글의 '제미나이' 등 유명 AI 엔진을 이용해서 개발한 EMGPT AI는 기업의 보안을 위해 설치형으로 제공된다. "기업들은 외부 AI를 사용하면서 자료 유출을 많이 걱정해요. 이런 걱정을 덜기 위해 AI를 기업 내부의 전산시스템에 설치하는 형태로 제공해요. 결코 기업 자료를 외부 서버로 가져가지 않아요."

그만큼 기업에는 꼭 필요한 기능들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만만찮은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다. EM데이터의 경우 세계 1위 기업 미국 스노플레이크, EM그래프는 데이터 시각화 분야의 세계 1위 업체 태블로가 버티고 있으며 AI는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과연 국내 스타트업이 이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쉽게 이길 수 없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갖지 못한 무기가 있어요. 바로 고객 맞춤화(커스터마이징)와 가격이죠."

AI가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해 그림으로 보여주는 'EM그래프' 화면. 일루넥스 제공

AI가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해 그림으로 보여주는 'EM그래프' 화면. 일루넥스 제공


"도둑질 의심" 모방품까지 등장

박 대표가 세계 1위 기업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로 내세운 커스터마이징이란 고객사 요구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바꿔주는 것이다. "세계 1위 기업들은 특정 기업의 요구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쉽게 수정해주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가능해요. 그러면서 비용은 세계적 기업들보다 훨씬 저렴해요. 이를 앞세워 틈새시장을 노리죠."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현재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충북테크노파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 등 공공기관과 단체,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약 50개 기업이 EM솔루션을 사용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체 개발비를 들이는 것보다 EM솔루션을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EM데이터 기능만 개발에 최소 20억 원 이상 필요해요. 그러니 비용 효율화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EM솔루션 사용이 경제적이죠. 특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보다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에 더 필요해요."

EM솔루션이 잘나가다 보니 최근 유사 제품까지 등장해 박 대표의 속을 태우고 있다. "EM솔루션을 7년에 걸쳐 개발했어요. 관련 기술에 15개 특허가 걸려 있다 보니 성능을 흉내 내지 못하고 겉모습만 비슷하게 만든 모방품이 나왔어요. 우리와 함께 공동 사업한 중견기업에서 모방품을 내놓았죠. 일종의 도둑질을 당한 셈이죠."

박 대표는 해당 기업을 상대로 법적 조치까지 고려 중이다. "해당 중견기업에 특허 침해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렸는데 여전히 모방품을 팔고 있어요. 심지어 해당 업체는 우리와 사업하며 불법 도용 금지 서약까지 맺었던 곳이에요.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에도 이 문제를 알렸어요. 만약 시정하지 않고 계속 판매한다면 소송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하루 7시간 근무제 도입

지난해 박 대표는 늘어나는 인력에 맞춰 경기 고양시에 240평 규모 사무실을 매입했다. 회사가 서울에 없으면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 7시간 근무제와 탄력통근제, 재택근무다. "인재 유치를 위한 당근으로 도입했어요. 직원들은 오전 9~11시 사이에 출근해 7시간 일하고 퇴근해요. 먼 거리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죠. 또 금요일은 집에서 일해요. 수원에 사는 직원은 주 2일 재택 근무를 하죠."

지난해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된 것도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된다. 전체 직원 38명 가운데 30명이 개발자다. 그만큼 연구개발 비중이 높다.

매출은 2023년 24억 원이었고 지난해 30억 원을 예상한다. 올해 목표는 60억 원이다. 손익은 아직 적자다. "2년 전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는데 지난해 사무실을 매입하고 개발인력을 늘리면서 비용이 증가해 다시 적자가 났어요. 내년 흑자 전환을 예상해요."

투자는 지금까지 15억 원을 받았다. 주요 투자자는 IBK기업은행, 선보엔젤파트너스, 벤처스퀘어 등이다.

평생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사는 것을 꿈꾸는 박진혁 일루넥스 대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위해 산학연대를 강조했다. "대학이 기업과 손잡고 학생들을 기업의 개발 작업에 참여시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류기찬 인턴기자

평생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사는 것을 꿈꾸는 박진혁 일루넥스 대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위해 산학연대를 강조했다. "대학이 기업과 손잡고 학생들을 기업의 개발 작업에 참여시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류기찬 인턴기자


3형제가 함께 운영

소프트웨어공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오픈타이드, NHN테크, KT스카이라이프 등에서 15년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삼성 계열의 오픈타이드에서 반도체 공정처리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했고 NHN테크에서 사내 협업 소프트웨어 '네이버웍스' 개발을, KT스카이라이프 시절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작업을 했어요. 창업 후에도 초기 EM솔루션 개발에 직접 참여했죠."

특이하게도 일루넥스는 3형제가 경영하는 형제 기업이다. "LG디스플레이에서 일한 맏형이 기업의 경쟁력 분석이라는 창업 아이디어를 줬어요. 맏형이 재무총괄(CFO), 작은형이 디자인총괄(CDO)을 맡고 있죠. 회사 로고와 EM솔루션의 디자인을 작은형이 했어요."

형제 경영의 장점은 허심탄회한 의견 개진이다. "서로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요. 그래서 싸우기도 하지만 바로 풀리죠.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회사 경영에 큰 장점이에요."

그는 내년을 사업 확장의 기회로 본다. "유럽연합(EU)이 내년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해요. 그렇게 되면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부품이나 소재, 원자재 공급망을 제출해야 해요. 이런 것들을 분석하기 위해 EM솔루션이 많이 쓰일 것으로 봐요. 여기 맞춰 하반기에 일본 등 해외에도 적극 진출할 예정입니다."

하나증권과 손잡고 토큰증권(STO) 사업도 할 예정이다. 그가 구상하는 토큰증권은 기술을 소재로 한 것이 특징이다. "기업의 특허를 사고팔 수 있는 토큰증권으로 만들려고 해요. 하나증권과 업무협약을 맺고 혁신금융 규제샌드박스 신청을 했어요. 통과되면 하나증권과 합작회사나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고려하고 있어요."

박 대표의 꿈은 "죽을 때까지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다. 그만큼 소프트웨어 개발에 애착을 갖고 있는 그는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 산학연대를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 배출하면 안 돼요. 인력 숫자에 치중하면 깊이 있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핵심 개발에 투입할 수 없어요. 오래 가르치더라도 실력자를 키워야죠. 그러려면 대학생들이 기업개발에 참여해 현실 감각과 필요한 능력을 키워야 해요. 산학연대가 답이에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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