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책장을 펼쳤다, 온기가 번졌다… 도서관에서 쉬어 갈까

입력
2025.02.12 04:30
20면
구독

전주 이색 도서관 여행

전주 덕진공원의 연화정도서관. 연못 중간에 지은 'ㄱ'자 한옥이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전주 덕진공원의 연화정도서관. 연못 중간에 지은 'ㄱ'자 한옥이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전주 덕진공원의 연화정도서관. 연못 중간에 지은 'ㄱ'자 한옥이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전주 덕진공원의 연화정도서관. 연못 중간에 지은 'ㄱ'자 한옥이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지난 6일, 전주시청 로비로 들어서니 뜨끈한 공기가 얼굴을 확 덮쳤다. 바깥 날씨가 유난히 차가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이 있고 은은한 조명이 있고 그 안에서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는 온화한 마음들이 내뿜는 온기 때문인 게 분명하다. 로비 벽면과 천장까지 닿을 듯한 4개 기둥이 온통 서가로 장식돼 있다. 이름하여 ‘책기둥도서관’이다.

손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간 시렁에서 책을 꺼내 읽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도서관의 쓸모는 독서보다 인테리어, 뭐든지 빠른 디지털보다 느린 아날로그 감성으로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려는 의도에 방점이 찍힌다. 보는 것만으로 푸근하고 풍성하다.

전주시청 로비의 책기둥도서관. 책으로 장식된 공간이 보는 것만으로 푸근하다.

전주시청 로비의 책기둥도서관. 책으로 장식된 공간이 보는 것만으로 푸근하다.


여행객들이 전주시청 책기둥도서관에서 쉬고 있다.

여행객들이 전주시청 책기둥도서관에서 쉬고 있다.

여행을 하다 피곤할 때 부담 없이 들러 편히 쉴 수 있는 곳, 책이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다소 허세 담긴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 그러다 책장을 넘기며 따스한 감성 한 조각 담아갈 수 있는 전주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꽃심, 완산, 금암… 시립도서관의 편견을 깨다

완산구 중화산동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은 공립 도서관은 경직되고 딱딱할 거라는 편견을 허문다. ‘꽃심’이라는 명칭부터 말랑말랑하다. 소설가 최명희가 대하소설 ‘혼불’에서 전주를 가리켜 ‘꽃심을 지닌 땅’이라 표현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아름다운 빛깔과 모양, 향기를 피워내는 꽃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10여 년 전 전주 시민이 어떤 책을 가장 많이 읽었는지 조사한 결과 혼불 1권이 첫손에 꼽혔다고 한다. 도서관 외부 담장에는 꽃심을 타인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대동, 문화예술의 품격을 추구하는 풍류, 새로움을 창출하는 창진, 의로움을 지키고 숭상하는 올곧음으로 해석해 놓았다. 이를테면 꽃심은 작은 씨앗에서 풍성한 문화의 꽃을 피워내는 전주의 힘과 정신이다.

꽃심도서관의 벽면 서고.

꽃심도서관의 벽면 서고.


꽃심도서관에는 책장 사이 숨어서 쉬거나 독서할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꽃심도서관에는 책장 사이 숨어서 쉬거나 독서할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서고 틈새에 독서 공간을 배치한 꽃심도서관.

서고 틈새에 독서 공간을 배치한 꽃심도서관.

1층 로비로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향을 풍기는 카페와 아이들을 위한 ‘야호 책놀이터’가 자리 잡고 있다. 책과 독서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는데, 책장과 책장 사이에 책 읽는 아이들이 숨어 있다. 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2층 열람실도 마찬가지다. 미로같이 배치된 서고 곳곳에 틀어박혀 쉬거나 독서할 공간이 숨어 있다. 책으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공간이다.

3층 ‘우주로1216’은 도서관에서 가장 공들인 곳이다. 학생이지만 역설적으로 독서와 거리가 먼 12세부터 16세까지 청소년을 위한 ‘우리가 주인인 행성’이다. 또래 청소년이 공간 구성에 직접 참여해 겉보기에 산만한 놀이터에 가깝다. 마음대로 뛰고 뒹굴 수 있는 매트, 무언가(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공작소, 회전문식 책장을 열면 나타나는 비밀의 방 등이 도서관에 대한 선입견을 깬다.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회전문 형식의 책장을 밀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난다.

꽃심도서관의 12~16세 전용 '우주로1216'. 회전문 형식의 책장을 밀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난다.

한옥마을에서 가까운 완산도서관은 전주 시민들 열에 아홉은 이용했다는 대표 도서관이다. 로비로 들어서면 지붕까지 뻥 뚫린 개방감에 놀란다. 2, 3층 이동 통로와 열람실에도 유리 천장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은은하게 비친다. 고급 호텔에 들어선 인상을 풍긴다. 1층 전시실에선 현재 ‘미로 속 책과 예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원광대 문예창작학과와 미술학과에서 구상하고, 아이들이 내용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체험형 전시다.

도서관이 위치한 곳은 조선 초 선비 유분이 세운 혜학루(惠學樓)가 있던 자리다. 당시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호남의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서 유분의 절의를 삶의 지표를 삼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전북 학맥의 중심이었으니 도서관 자리로 더할 나위 없다.

호텔 로비처럼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하는 완산도서관.

호텔 로비처럼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하는 완산도서관.


완산도서관에서는 현재 ‘미로 속 책과 예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완산도서관에서는 현재 ‘미로 속 책과 예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 완산도서관은 4월이 제격이다. 도서관은 좌우에 낮은 언덕을 끼고 있다. 전주천을 바라보고 왼편에 위치한 완산칠봉꽃동산은 지역에서 이름난 겹벚꽃 명소다. 매년 4월 중순이면 온 산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 사이에 동학농민군 추모 공간인 ‘녹두관’이 자리 잡고 있다.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안치하고, 전주의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 공간이다. 오른편 언덕에는 천주교 성지 ‘초록바위’가 있다. 1866년 서울 서소문에서 순교한 천주교인 남종삼과 홍봉주의 아들이 전주감영으로 이송돼 처형된 곳이다.

금암도서관 옥상 벤치에 앉으면 구도심 풍경이 정겹게 펼쳐진다.

금암도서관 옥상 벤치에 앉으면 구도심 풍경이 정겹게 펼쳐진다.


금암도서관 옥상에서 보이는 구도심 풍경.

금암도서관 옥상에서 보이는 구도심 풍경.

덕진구 금암도서관은 전주의 도서관 건물 중 가장 오래됐다. 그만큼 이용객도 많은데 여행자 입장에서 이 도서관의 미덕은 도심 전망이다. 일대에서 제법 높은 언덕에 자리해 트임마당(옥상) 벤치에 앉으면 금암동 구도심이 정겹게 내려다보인다. 낮은 주택 사이 골목으로 이동하는 사람과 차량이 소시민의 일상을 담은 잡지 같고 소설 같다.

첫마중, 숲속, 연화정… 도서관이 그림이다

전주역에 내린 여행객이라면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을 지나치기 아깝다. 도서관은 차로를 사이에 두고 길 중간에 가로공원이 조성된 백제대로에 있다. 전주역에서 공원길을 따라 약 400m를 걸으면 빨간 외관이 돋보이는 구조물이 바로 도서관이다. 여행자 쉼터를 겸하는 작은 도서관이지만 내부는 옹골차다.

전주역에서 가까운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도로관리용 자재창고였던 컨테이너를 활용했다.

전주역에서 가까운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도로관리용 자재창고였던 컨테이너를 활용했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은 다양한 예술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은 다양한 예술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의 스크롤북.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의 스크롤북.


사진집과 명화집, 아트북 등으로 장식한 갤러리 같은 서가가 눈길을 잡는다. 개중에는 데비이드 호크니의 예술작품을 담아 전 세계에 9,000부만 출간된 ‘비거북(A Bigger Book)’, 롤러를 돌려서 읽는 독특한 형식의 스크롤북도 있다. 전주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과 잡지도 비치돼 있다.

완산구 평화동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이름처럼 시집만 모아 놓은 도서관이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연결된 산책로 초입에 맏내제라는 작은 연못이 보이고, 연못 둘레길을 걷다 오른편 산자락으로 눈길을 돌리면 너와로 외벽을 장식한 듯한 작은 도서관이 보인다. 건물 주변 소나무를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시공한 정성이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닮았다. 명예 도서관장 김용택 시인은 ‘살아온 삶과, 살고 있는 삶과, 살아갈 삶에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라 표현했다.

자연에 안긴 듯 지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자연에 안긴 듯 지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의 '만나다' 서고. 시인의 자필 서명 시집이 배치돼 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의 '만나다' 서고. 시인의 자필 서명 시집이 배치돼 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의 문학자판기.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의 문학자판기.


내부는 가정집처럼 아담하지만, 다락 열람실과 계단식 강연장까지 갖췄다. 창문으로 눈 덮인 맏내제 풍경이 담기고, 계단을 따라 배치한 ‘만나다’ 서고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을 수록한 시집으로 채워져 있다. ‘오늘의 운세’ 풀이하듯 문장을 토해내는 ‘문학자판기’가 흥미롭다. 당일의 감정을 선택해 버튼을 누르면 그에 어울리는 글귀가 영수증처럼 인쇄된다.

전주에서 여행지로 가장 주목받는 도서관은 연화정도서관이다. 2022년 6월 덕진공원 연못 한가운데에 매점으로 사용하던 정자를 허물고 ‘ㄱ’ 자형 한옥으로 지었다. 도서관까지 연결되는 연화교, 본관인 연화당, 누각인 연화루가 아름드리 버드나무 세 그루와 어우러져 전통의 멋을 한껏 풍긴다. 갖춘 책은 적지만 분위기만은 으뜸이다. 붉은 목재와 어우러진 조명이 은은한 가운데, 전통 창살로 장식한 통유리로 연못 주변 계절의 변화가 가득 담긴다.

덕진공원 연못 한가운데에 한옥으로 지은 연화정도서관. 탐방로 주변은 연꽃 군락이다.

덕진공원 연못 한가운데에 한옥으로 지은 연화정도서관. 탐방로 주변은 연꽃 군락이다.


한옥의 온기가 느껴지는 연화정도서관 내부.

한옥의 온기가 느껴지는 연화정도서관 내부.


연화정도서관 창문으로 덕진공원의 계절 풍경이 담긴다.

연화정도서관 창문으로 덕진공원의 계절 풍경이 담긴다.


전통 창살의 멋스러움을 더한 덕진공원의 포토존.

전통 창살의 멋스러움을 더한 덕진공원의 포토존.


연화정도서관이 자리한 덕진공원 연못에서 수달가족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연화정도서관이 자리한 덕진공원 연못에서 수달가족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덕진공원은 고려시대 전후 조성된 연못(덕진호)을 일제가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유원지로 개발했고, 1998년 대대적으로 정비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여름이면 연꽃 군락이 수면을 가득 덮는다. 수서식물을 보호막으로 여러 물고기와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데, 요즘은 먹이잡이를 하는 수달이 얼음 구멍으로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옥마을 돌아다니다 쉬기 좋은 도서관

한옥마을에도 같은 이름의 도서관이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흙마당을 가운데 두고 3개 공간으로 나뉜다. ‘꿈방앗간’에서는 내집처럼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고, ‘대나무숲’에서는 엽서와 편지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마음곳간’은 시골집 안방처럼 아늑하다. 따끈한 온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한쪽 구석에 옆집 고양이 ‘호두’가 네 다리 뻗고 늘어져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해 문을 닫기 20분 전이면 알아서 퇴근해 도서관 측에서 아예 자리를 따로 내줬다고 한다. 호두처럼 눕는 건 불가능하지만, 느긋하게 편히 쉬기 좋은 곳이다.

한옥마을도서관에서 옆집 고양이 '호두'가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한옥마을도서관에서 옆집 고양이 '호두'가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안방처럼 아늑한 한옥마을도서관.

안방처럼 아늑한 한옥마을도서관.


카페 같은 분위기의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카페 같은 분위기의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서학예술마을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초등학교가 보이는 다락방(오른쪽)이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초등학교가 보이는 다락방(오른쪽)이다.

한옥마을에서 전주천 남천교를 건너면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이 있다. 오래된 팽나무가 어귀를 지키고 선 마을에 회화, 도기, 공예 예술인들이 이주하며 자연스럽게 서학예술마을이 형성됐다. 1,000여 권의 예술 관련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 내부 분위기는 북카페에 가깝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여러 공간 중에서도 창밖으로 초등학교가 보이는 다락방이 가장 인기 있다.

전주 도서관 여행 지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주 도서관 여행 지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주에는 12개 시립도서관을 포함해 148개의 도서관이 있다. 시는 5명 이상 독서 동아리에 필요한 책과 장소를 지원하고 일정 기간 ‘도서길잡이’를 파견해 자생력을 돕는다. 지금까지 공식 등록된 ‘책 읽는 시민 모임’만 434개다. 전주시는 3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 5개 코스의 ‘전주도서관 여행’을 운영할 계획이다. 전주도서관 홈페이지(lib.jeonju.go.kr)에서 다음 달 4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전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