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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정치의 위험성

입력
2025.03.01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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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거짓 해명 들통
정치인들 거짓말 흔해져
거짓의 현실화 위험 커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예전 공직자나 정치인들을 취재할 때 어떤 믿음은 잃지 않았다. 그가 진실을 말하지는 않더라도, 또는 어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과장하더라도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실제 대개의 취재원들이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논점을 바꾸거나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거짓말만은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셈이었다.

정치인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사자성어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이었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신뢰 형성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의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거짓말만은 애써 피했던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윤리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국가의 근본 토대와 관련됐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을 너무 쉽게 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그렇다.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당시 공관위원장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상현이한테 내가 한번 더 얘기를 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명태균씨에게 말하는 윤 대통령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윤상현 의원이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명백하다. 예전 같으면 거짓 해명만으로도 시끌벅적했겠지만 지금은 대체로 심드렁한 분위기다. 탄핵 심판에서 수많은 거짓 해명 정황과 궤변을 접하다 보니 익숙해진 탓일지 모르겠다. 거짓말로 성공을 경험한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는 자기 거짓말을 스스로 믿어버린다고 하는데, 윤 대통령은 그 단계까지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도 신뢰하긴 어렵다. 선거운동기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에서 이미 유죄 선고를 받은 사안을 떠나서도 기본사회 공약이나 노선이 오락가락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내세웠다가 본인 체포영장이 들어오니 입장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최근 이 대표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중도보수론 등을 내세우며 우클릭을 하는 모습을 보여도 지지율이 확장되지 않는 것도 이 대표 언행의 신뢰 문제 탓이 크다.

거짓말이 맹목적 지지자들에게 일시적으로 통할 수도 있지만, 중도층이나 반대 진영에선 더 큰 불신과 혐오를 불러온다. 극단적 편가르기로 심리적 내전이 격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 말씀처럼 국가의 존립 자체를 걱정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신뢰 상실의 위기 말고도 정치인의 거짓말은 실질적인 폭력적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거짓말이 권력을 만나면 현실 자체를 변형하고 조작할 수 있어서다. 과거 공산권 국가나 권위주의 정부에서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거짓말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 기록이나 통계를 조작하는 일도 흔했다. 실업자의 존재를 부정한 사회주의 경제에선 실업자는 유령 인간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권력자의 거짓말은 사실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의 '근본적 파괴'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12〮3 비상계엄이 의도대로 성공했다면, 부정선거 음모론을 입증하기 위한 조작이 벌어졌을 개연성도 컸다. 누군가의 거짓과 망상이 현실화할 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다. 만에 하나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돼 복귀한다면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요원한 바람이지만, 누구라도 거짓을 일삼는 인사가 권력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송용창 정치국제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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