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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닌텐도, 이재명과 엔비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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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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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이명박(MB) 대통령은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당시 우리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월 수출이 무려 32.8%나 감소하는 등 비상등이 켜진 상태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비상수출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對)일본 무역적자 해소 방안의 하나로 콘솔 게임기의 국산화를 언급한 것이다.
그 시절 전 세계엔 ‘닌텐도 열풍’이 불었다. MB가 지목한 게임기 ‘닌텐도 DS라이트’는 2006년 출시 이후 1억 개 이상,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개 넘게 팔린 ‘히트 상품’이었다. 대통령 입장에서 닌텐도는 충분히 탐나는 기업이었다.
MB의 닌텐도 발언 이후 정부 기관들이 앞다퉈 게임 산업 지원에 나섰고, 국산 게임기가 출시됐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게임기의 성능 자체는 훌륭했지만 게임 소프트웨어가 부족했고 경쟁력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1889년 화투패 제작으로 시작해 가정용 비디오게임과 휴대용 게임을 개발하며 전 세계 게임 산업을 이끌던 닌텐도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통령의 관심으로 주목받은 게임 산업은 역설적이게도 MB정부 시절 최대 암흑기를 맞는다. 범죄 등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게임 중독을 지목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첨단 기술·제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대통령과 갈팡질팡하는 산업 정책을 두고 네티즌들은 ‘명텐도(이명박+닌텐도)’란 말로 조롱했다.
일본 닌텐도가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 정치인과 권력자들은 기업 활동이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는, ‘의지(意志)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 기술력에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면 못할 게 뭐냐는 식이다. MB뿐만 아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뜨자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게 박근혜 정부였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OOO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OO개 만들겠다’는 장밋빛 공약을 거침없이 내놓는다.
최근 논란이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국판 엔비디아’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표는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새로 생겼다. 그중에 국민의 몫, 지분이 30%다. 그래서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를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막 그렇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약탈 경제’, ‘사회주의식 발상’이라 비판하지만, 스타트업의 초기 성장에 국가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안보적 측면에서 자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표 발언의 취지와 방향성까지 문제 삼는 건 과도하다고 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도 출범 초기 대만 정부 자금을 기반으로 한 공기업이었다.
진짜 문제는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어떻게 키우느냐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은 실패와 혁신, 끊임없는 도전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성장했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급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업 성장을 통한 국부 창출, 사회적 분배를 이야기하려면 우리 기업 환경에서 실패한 스타트업의 재도전이 가능한지, 창의적인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없는지, 우수한 연구개발 인재들이 배출되는 교육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이를 해결할 정치권의 역할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앞뒤가 바뀌었다.
막강한 자금력, 수많은 기술인재, 압도적인 점유율로 시장을 지배하던 거대 기업들도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해 한순간 좌초하는 게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으로 요동치는데 우리 정치인들만 기업의 생존경쟁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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