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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금기어가 된 현실에 대하여

입력
2025.03.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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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젠더 불평등

젠더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페미니즘은 유효하다. openclipart.org

젠더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페미니즘은 유효하다. openclipart.org


젠더 불평등의 양상은 지역 및 국가별로 상이하고 계층·집단에 따라서도 사뭇 다를 수 있다. 젠더 불평등의 현실을 체감·이해하고 수용하는 정도는 주체에 따라 더 상이하다. 둘 다 종교와 문화, 유구한 관습의 틀 안에 놓여 있지만 전자가 몇몇 지수와 통계로 드러나는 사회과학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다분히 인문과학의 영역이다. 거기에는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각자가 소속된 ‘집단(부족)’의 도덕관·세계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경우 언젠가부터 젠더 불평등이나 여성 인권, ‘페미니즘’이란 말이, 심지어 미디어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조차 마치 금기어처럼 삭제되고, ‘페미니스트’란 말이 낙인처럼 쓰이곤 한다. 여성주의자 조주은이 학부모로서 자녀의 학교에서, 또 노동 현장과 가정에서 경험한 일상의 젠더 불평등 실태를 담담히 들춰 보인 책에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란 제목을 단 게 약 20년 전이었다.

그는 책에서 성별 위계화와 남성 경험의 특권화, 남녀 성 이분법, 고정된 성 역할 의식 등에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을 모두 페미니스트라 정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란 사실을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까닭은 페미니스트라고 인정하는 순간 유의미한 관계망(부족)으로부터 추방되거나 주류 남성들과의 관계가 단절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썼다.

소위 ‘주류 남성’들은 ‘윤리 경찰’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 이란이나 탈레반 체제하의 아프가니스탄 현실과 한국의 진전된 현실을 대비하며, 다른 진실 예컨대 OECD 주요 회원국 중 한국이 부동의 성별 임금 격차 1위 국가라는 현실은 외면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에 관한 한 양당 구도하의 한국 정치 집단 역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하루 앞둔 2023년 3월 7일, 세계 젠더 불평등이 근년 들어 악화하고 있으며 그 격차를 해소하는 데 최소 300년이 걸릴 것으로 우려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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