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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대의를 독점했다고 믿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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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몬태나주 비질란테가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묘사한 1920년대 석판화. 위키피디아.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자코뱅의 공포정치가 극성이던 1793년 수도 파리를 배경으로, 순수한 정의감으로 혁명에 동참한 한 가난한 화가(가믈랭)가 집단 광기와 권력, 이념의 열정에 취해 냉혹한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소설 ‘신들은 목마르다’로 탐색했다. 혁명재판소 배심원이 된 화가는 재판을 거듭하면서 한때 자신이 숭배했던 이들을 숱하게 단두대로 보낸다. 작가에게 인간은, 이념과 대의가 아무리 순결해 보여도, 정의(의 심판)와 권력을 독점하게 해도 될 만한 존재가 아니다.
1863년 말 무법의 미국 서부 몬태나주 버지니아시티 시민 일부가 '자경단(Vigilance Committee)’을 결성했다. 인근 애들러 글루크 등지의 금광을 둘러싸고 강도와 살인이 횡행하면서 그해에만 100여 명이 피살됐다. ‘이노센트(Innocents)’라 불리던 강도단의 실질적 리더가 지역 보안관이던 헨리 플러머(Henry Plummer)란 사실을 알게 된 직후였다. 자경단원들은 악을 응징하며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나눴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0일 플러머와 두 명의 강도를 교수형에 처한 것을 시작으로 자경 활동을 본격화했다.
1864년 말 치안 판사(Hezekiah Hosmer)가 버지니아시티에 부임, 공개대배심을 소집해 자경단의 모든 독자적인 활동을 불법화한다고 선언했지만 자경단은 훗날 주 상원의원이 되는 리더 윌버 샌더스(Wilbur Sanders)의 말 “정부가 무너지면 시민이 최후의 보루”를 앞세워 배타적인 범죄 척결권을 요구하며 버텼다. 앞서 1864년 3월 10일, 자경단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술만 먹으면 난폭해지곤 하던 마을의 말썽꾼 잭 슬레이드(Jack Slade)를, “마지막으로 아내를 보게 해달라”는 애원까지 외면하며 목을 매단 바 있었다. 몬태나주의 자경단은 19세기 말까지 여러 지역에서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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