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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봄, 사회의 봄, 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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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경칩(驚蟄)인 5일 오후 부산 수영구 수영사적공원에 노란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려 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뉴스1
3월이니까 봄이다.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졌는데 기분은 영 봄 같지 않다. 1월 새해맞이도 그랬다. 그다지 설렘이 없었다. 45년 만이라는 비상계엄 충격이 겨울 내내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침에 일어나선 휴대폰으로 뉴스부터 찾아봤다. '속보'를 달지 않은 기사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도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근심부터 나눴다. 일상이 크게 흔들렸다.
12월 3일 그날 밤 나 역시 깨어 있었다. 노트북 모니터로 국회로 들어가는 군인들을 목격했다. 그곳에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군인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한 발의 총알이라도 날아가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임계점이었다. 초조하게 지켜보는데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다행히 군인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마음 졸이던 11일이 지난 후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세 달 전 일이다. 비상계엄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두고 외국 언론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을 주목했다. 크게 위로가 됐다. 우리 민주주의의 저력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회복탄력성에는 비상계엄 전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걸 딛고 더 나은 나라로 갈 수 있다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 최고의 덕담이었다.
세 달이 지난 현재, 이 회복탄력성은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주말마다 이어진 탄핵 찬성과 반대라는 거리의 정치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임계점이다. 양비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 그냥 옳은 것이다. 국민주권이라는 정신과 삼권분립이라는 제도가 쌓아온 민주화의 '축적의 힘'이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찢어진 공동체가 치유를 요구한다는 것 또한 모르진 않는다. 정치 양극화 완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이뤄내야 하고, 타협과 공존을 위한 정치 문화를 일궈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하되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마음의 습관'을 길러내야 한다. 그리하면 시대역행적인 계엄이 할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 오오 봄이여"
김수영의 시 '봄밤'이다. 봄이 오고 있지만 밤이 계속되는 시간. 그러나 아침이 찾아올 것이기에 '서둘지 말라'는 말이 위안을 안겨준다. 김수영의 위로에는 더디더라도 새로운 날이 열릴 거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희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계절의 봄은 절로 오지만 사회의 봄은 절로 오지 않는다. 표류하는 사회와 일상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려면 우리 모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수고로움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사회로의 희망을 품어야 한다. 자연의 봄과 함께 사회의 봄이 오길, 흔들렸던 일상을 회복하는 나의 봄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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