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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편법으로 유지한 경영권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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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용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임시주총 결과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이제중 부회장(왼쪽부터), 박기덕 대표이사, 신봉철 노조부위원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경영권은 법과 시장 원리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는 지난 7일 영풍 측이 제기한 고려아연 임시주총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대부분을 인용하고 '집중투표제' 채택에 대해서만 효력을 인정했다. 이는 법적으로도 임시주총 당시 최대주주 영풍의 의결권 제한 행위가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결정은 기업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둘러싼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는 경영권 분쟁 이후 처음 치러진 표 대결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분쟁이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주총 하루 전, 최윤범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호주 자회사(SMC)를 동원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25.4%)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호주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며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르면 두 회사가 서로 상대 회사 주식을 10% 이상 보유하면 의결권이 제한된다. 이는 인위적 지분 조작을 통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최 회장 측은 이를 악용해 손자회사(SMC)가 영풍 지분 10.33%를 매입하도록 함으로써,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의 의결권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크다. 영풍그룹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어 있어 신규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는 엄격히 금지된다(공정거래법 제21조, 제22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상호출자 규제의 목적은 기업 지배구조 왜곡을 방지하고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고려아연이 SMC를 이용해 영풍의 의결권을 박탈한 것은 이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외국계 자회사를 활용한 점도 문제다. 고려아연이 SMC를 동원한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및 이사진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이나, 역설적으로 상법 제369조 제3항(상호주 의결권 제한)이 외국 유한회사에는 직접 적용되기 쉽지 않다. 우리 상법은 주식회사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으며, 외국법인이나 유한회사에는 상호주 규정을 준용하지 않는다. 즉, 최 회장 측이 의결권 제한을 주장한 법적 근거가 오히려 불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편법이 용인된다면 시장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이번 사례가 선례로 남을 경우,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빼앗으려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전례가 될 것이다.
경영권 분쟁은 결국 지분율로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영풍-MBK 연합은 46.7%, 최 회장 측은 39.16%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정상적 주총이었다면 경영권이 합리적으로 정리됐어야 한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순환출자를 활용한 탈법적 방식으로 주주총회 결과를 왜곡했다.
불법적 방식으로 얻은 경영권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편법과 탈법을 용인할지, 아니면 공정한 경쟁 원칙을 지켜낼지, 이제 시장과 투자자의 판단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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